03 비밀은 위험해 한창 박귀신과 노느라 새벽에야 잠에 든 백현은 하품을 잔뜩 해대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아침에도 전쟁터 같은 출근길에 이리저리 치이느라 –그래 봤자 찬열이 운전하는 옆에서 편안히, 꾸벅꾸벅 졸았다만- 더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어제, 그놈의 박귀신님이 목이나 몸 이곳저곳에 흔적을 남겨서 매우 곤란했다구. 잘 티가 나지 않는 반창고 같은 것...
-12- 백현이 가게를 뛰쳐나온 그 시각, 찬열은. 1부를 마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2부에 이어질, 마지막을 지어줄 후배들의 이야기가 있었으나. 더 들을 수 없었다. 힘이 없었다.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조금 버거웠다. 후련한 마음으로 마지막 이야기를 써 내렸다고 해도 그랬다. 마지막은 늘 힘든 거니까. 작가님, 가시게요? 물어보는 후배들과 다른 식구들...
-11- 무더운 여름이 지나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백현의 카페 앞, 커다란 나무가 잎을 짙은 색으로 드리웠다. 가을이 오나. 벌써.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찬열을 마지막으로 본 무더운 여름날이 식은 바람으로 지워지고 있으니까. 긴소매를 입은 자신의 팔을 괜히 매만지다, 늦은 오후 사람이 없는 가게 안에서 혼자 팔을 겹쳐...
-10- 찬열은 요새, 왜인지 모르게 힘이 없다. 아마 제 옆에 왕왕대던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없어서 그런가. 그 생각에 미치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참 웃겨서 허, 헛웃음 내뱉고. 곧장 생각에 잠겨버렸다. 찬열은 아픈 백현을 마주했던 그 날, 쉬어버린 백현의 목소리. 펄펄 끓는 몸의 온도와 반대로 싸늘한 바람이 들던 그의 방. 약병을 매만지...
-8- 시간은 어느덧 흘러 무더운 여름이 되어 열대야를 맞이하는 때가 되었다. 대본이 꼬여 백현을 잘 보지 못했던 것도 며칠이면 다 지나고 말았다. 다시금, 변함없이 매일 보는 사이가 되었다는 소리. 여전히 낮이면 백현의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밤이면 문을 닫은 백현의 가게 앞에서 만나 찬열의 차를 탔다. 버스 막차를 타고 가려니 이젠 쓸쓸하기까지 하다며 ...
좋아하는 여름의 여운으로 오랜만에 돌아와서 기쁩니다. 많이 봐주세요. 7편은 페(광철)님의 포스타입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링크 ↓) 여름의 여운, 8 w. 원 warn 부드러운 모래가 어두운 피부의 발이 한 걸음 한 걸음 할 때마다 묻어났다. 종인의 저택에서 나와 조금 걸으면 나오는 해변. 오늘도 종인은 남색 수영복 차림으로 얕게 선을 그리는 파도에 발을...
안녕하세요. 원 warn 입니다. 성인 인증 관련하여 불편함과 불안함이 있던 터라, 포스타입에서 딜리헙으로 옮길 예정입니다. 현재 연재 중인 글들은 모두 딜리헙에서 연재 진행될 것이구요,차후 완결이 난 글들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외전을 제외하고 포스타입에 한 꺼번에 올릴 생각입니다. 그동안 저의 포스타입, warning 에서 읽어주신 글들은 지우지 ...
-7- 오후 두 시, 가장 노곤한 때. 환히 열려있는 카페 안의 백현은 책상 위로 잔뜩 풀어진 얼굴을 올려두었다. 정신없이 밀려드는 점심시간 주문을 받고서 진이 빠져 누워있기를 자주였다. 날이 풀리기 시작하니 백현의 표정도, 몸도 마음도, 잔뜩 풀려 부드러워졌다. 긴장이 탁 풀려 저도 모르게 졸고 있을 때였다. 턱을 괸 채로 꾸벅꾸벅 고갯짓하다 쓰러지듯 자...
터벅터벅. 어둠 속은 둘의 발소리로 가득했고, 종인의 울음소리가 작게 공간을 더했다. 한참을 걷고, 또 걸은 후였다. 여전히 암흑 속의 둘이라 종인은 줄줄, 눈물을 흘리던 눈을 작게 떴다. 자신은 그 사는 동안 죽음을 직접, 피부로 느낀 적이 있던가. 생각해보면 전혀 그런 적이 없다. 가족의 죽음도 그저 불이 집을 감싼 그 장면으로, 친구의 죽음도 장례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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